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수화(樹話)이고, 전라남도 신안군 안좌면 읍동리 출생입니다.

1936년 일본 니혼 대학 미술학부를 마치고 도쿄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는데요.

1946-1949년 사이에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를 역임하고 신사실파전(新寫實派展)에 출품했습니다.

 

여러 차례 국전 심사위원으로 활약하고 1952년 홍익대 미술학부 교수, 1954년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1956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엠베지트 화랑을 위시하여 1957년 파리·니스·브뤼셀 등에서 계속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1959년 귀국하여 홍익대 교수·초대 예술원 회원·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1963년 제7회 상파울로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가하게 되어 브라질로 갔으며, 동 국제전의 명예상을 받기도 했으며, 그곳 현대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었습니다.

 

1964년 이후 부인인 수필가 김향안(金鄕岸, 본명 변동림)과 함께 미국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 중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2015년 김환기의 1971년작 작품은 서울옥션 홍콩 경매서 한화 47 2100만원 (31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었고, 이로써 이전의 최고가로 남아있던 박수근의 <빨래터>를 제치고 국내 작가 미술품 경매 중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2019 11 23일 김환기의 1971년작 작품은 크리스티 홍콩 경매서 한화 132 3600만원 (8800만 홍콩달러)에 낙찰되었고, 한국 미술품 중 최초로 한화 100억을 넘긴 작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의 서양화가로 한국 근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서구 모더니즘을 한국화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초창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였고, 프랑스와 미국에서 활동하며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이끌었습니다.

김환기는 추상 계열에서 벗어나 구상을 추구하면서도 오히려 조형수단의 자율적인 표현을 추구했으며, 또한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면, , 형태, 색체, 리듬 등으로 대상을 조형적으로 새롭게 표현했습니다.

 

<작품 활동>

전후 14회의 개인전을 국내외에서 가졌고, 1970년 한국일보사 주최 한국미술대상전(韓國美術大賞展)에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작품경향은 초기의 기하학적인 추상에서 출발하여 동양적인 관조(觀照)와 아취(雅趣)를 근간으로 한 반추상(半抽象)의 세계를 보이다가 도미(渡美) 후에는 완전히 추상화풍으로 전환하여 옵티컬한 양식의 새로운 사조(思潮)를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 작품으로 〈론도〉,〈산〉, 〈산월(山月), 〈야상곡(夜想曲),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이 있으며, 그의 작품 중 〈론도〉는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535호로 등록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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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7 9일생으로 앨런 존스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출신의 팝아트 화가입니다.


요크셔의 브래드포드에서 출생하여 왕립미술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국에서는 국보급의 화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호크니에 대해서 테이트 갤러리의 관장이었던 알렌 보우니스의 저서에 따르면 그가 예술 평의회의 의뢰로 회화 작품을 물색하던 중 21살의 신입생인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을 눈여겨 보고 구입을 원했으나 보수적인 평의회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호크니는 3년 후 금색 재킷과 금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하고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이후 예술평의회는 그의 추상화를 구입하게 되는데 그것이 아래의 61년 작, "서로 껴안고 있는 우리 두 사람"입니다.

 

이후 데이비드 호크니는 화풍을 바꾸어서 새로운 시도를 많이 도전했는데 화가로서의 작품 이외에도 일러스트레이터, 판화가, 사진작가, 무대 디자인, 영화제작자 등으로서도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한 대상을 여러 번의 사진을 찍은 후 콜라주화 하여 마치 모자이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독특한 화법은 호크니의 전형적인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그는 한동안 포토콜라주를 이용한 작품을 선보이다가 회화만이 지닌 관찰의 중요성에 다시 매료되어 회화로서 회귀한다. 그리고 건조한 풍경 속에서 물의 운동만큼은 생생하게 묘사를 하는 특징 때문에 호크니는 "수영장의 화가"라는 별명을 얻게 되는데요.

 

그의 작품들 특징 중 하나는 청년이 나체로 수영을 하거나 샤워를 하는 모습을 관객이 바라보는 관음적인 묘사도 있는데 호크니 자신이 동성애자이기도 합니다.

 

호크니는 자신의 성향 때문에 당시 보수적이었던 영국을 벗어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자신의 성향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는데요.

 

'예술가의 초상'(1972). 이 작품은 2018 11 16일 뉴욕 경매에서 9,030만 달러(1,018억원)에 낙찰되어 현존 작가 작품 최고 낙찰가를 기록했으며, 그림 속 서 있는 남성은 호크니의 11살 연하 애인이었던 피터 슐레진저를 모델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청력이 안 좋아서 40대가 될 무렵엔 완전히 청력을 잃게 됩니다.

 

2013년엔 그의 파트너와 호크니의 조수인 23세의 도미닉이 브리들링튼 집에서 약물파티를 하는데 도미닉이 코카인과 엑스터시 등을 흡입한 상태에서 강산성 세제를 복용하는 바람에 사망하게 되는데요.

 

이 사건으로 현장에 있던 호크니와 파트너가 경찰조사를 받게 되지만 파티를 벌이고 있는 도중에 호크니는 잠들고 있어서 결국 사건은 사고사로 처리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호크니는 집을 처분하고 그 곳에 연관된 모든 인연들을 끊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술의 이론에 대해서도 그가 편찬한 저서인 "명화의 비밀" "그림의 역사" "다시 그림이다"가 국내에 정식 번역된 상태이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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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머]


본명: 김세환

1977년생으로 41살

브랜뉴뮤직 대표이사


브랜뉴뮤직의 대표이이며, 작곡가 겸 가수로, Mr. BIG Daddy로도 불리우기도 합니다.

1996년 남성 듀오 조 앤 라이머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1999년 그룹 KROSS 멤버, 2000년 이현도 <완전 HIPHOP> 피처링,  김원준, 코요태 4집 음반의 랩 메이킹 및 피처링, 2003년 크래쉬의 객원 래퍼 등으로 활동했는데요.

 

같은 해 이효리의 히트곡 ‘Hey Girl’의 객원 래퍼로 참여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됩니다. 2007년에는 클레오 출신 채은정의 솔로 1집을 프로듀싱한 적도 있으며, 2009년에는 대중음악 작곡가이자 MC몽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김건우와 손잡고 <블루브랜드> 컴필레이션 음반 제작에 나서기도 했었습니다.



2009 12월경 발표한 디지털 싱글 <세상에 눈이 내리면>이 사실상 그의 마지막 음악 활동이었는데요. 이 음반을 끝으로 그는 자신의 활동보다 후배 가수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 전념하다가 2011년 중순에 브랜뉴뮤직을 설립하게 됩니다.

 

이후 버벌진트, 스윙스 등을 영입해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들어온 산이, 범키, 그리 등까지 줄줄이 히트를 기록하면서 힙합/R&B를 대중화시키는 데 일조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또한 조PD와 블락비를 기획하고 프로듀싱하기도 하였으며, 2012년 말에 자신이 대표로 있는 브랜뉴뮤직 소속 아티스트들과 함께 발표한 디지털 싱글 <Brand New Year>에서 간만에 자신의 랩을 선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은 안현모를 쟁취함으로 이슈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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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럽정보 - 완벽한 타인의 여배우 김지수 그녀는 누구인가?



이름:김지수

본명:양성윤(????)

1972년 생으로 나이와 다르게 동안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167cm의 훤칠한 키에 1992년 S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녀의 취미???

외모와는 다르게 스노보드, 수상스키, 제트스키 등 물로된 곳 위에서 타는 건 모두 잘 합니다.

스포츠광인데 외모만 봐서는 대부분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많았었습니다.

 

2015년부터 꾸준하게 유화 그림 실력을 뽑내고 있으며, 비구상 작품도 있습니다.

팔로워들의 글에 하나하나 답글이나 좋아요를 눌러주는 세심한 면도 보여줍니다.

 


김지수의 데뷔와 출연작을 보자면~~

 

2000년에 무면허 음주운전 등의 문제가 있었기는 하지만멜로 연기와 슬픈 연기를 잘하는 실력파 배우로 20여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한 배우 입니다.

 

특히 슬퍼서 울게 되는 연기를 할 때에는 왠만한 실력파 배우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정말 구슬프고 서럽게 잘 울며, 보는 시청자들도 따라서 울게 만드는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데뷔로는 여형사로 했으나 엄청난 흑역사로 본인도 별로 얘기하고 싶어하지 않으며, 본격적으로주목을 받기 시작한 작품으로 머나먼 쏭바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지도르 제대로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MBC드라마인 보고 또 보고에 출연하면서이며, 해당 작품에서 은주를 연기했습니다. 이후 나쁜 친구들, 온달왕자들, 태야은가득히 등에 출연하면서 당시에 시청률이 30%를 넘기도 했습니다.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요…^^;;

그 이후에도 미니시리즈에도 많이 출연했으나 작품은 떳으나 본인이 더 뜨지는 못하는 불운이 있기도 했습니다.

 

영화쪽에는 2005년 이윤기 감독의 데뷔작인 여자 정혜에 주연을 맡으면서 데뷔를 하게 되었고, 당시에 캐릭터인 정혜 역을 아주 잘 소화하게 되면서 여러 부분에서 재 조명을 받게 됩니다.

영화 자체는 흥행하지 못하였지만, 배우 김지수를 다시 알리게 되는 시발점이 되게 됩니다.

 

그러면서 청룡영화상과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게 되고, 영화계에서 지속적으로 러브콜이 들어옵니다.

가을로, 로망스, 사랑할 때 이야기 하는 것들 등에서 주연으로 출연하였으나흥행은

하지만 영화 완벽한타인을 통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됩니다.

 

김지수의 연기 실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요. 드라마 태양의 여자를 보시면, 어렸을 적에 입양된 후, 태어난 동생으로 인해 집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구박을 받는 역할을 맡는데 이 때에 신도영 캐릭터 역을 아주 잘 소화하면서 연기력을 뽐내게 됩니다.

당시에 드라마에 출연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력이 크게 뛰어나지 못한 부분 때문에 더욱 조명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이 후에 근초고왕, 어게인 등의 드라마에도 출연을 하였으나, 시청률이 낮은 것도 있고

그리고 얼마간 드라마에서 보지를 못하다가 2013년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에를 통해 복귀를 하였고 연기에 대한 반응은 역시나 긍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태양의여자에서 강렬한 그녀의 인상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건 사고가 좀 있는데

무면허 음주운전, 뺑소니 음주운전, 음주인터뷰

이렇게 굵직한 사건이 있으나둘다 범칙금 납부 후 자중하는 모습으로 크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음주 인터뷰는 뭐논란이 조금 되기는 했었습니다.


마치며...

지금은 돌아가신 영화배우 김주혁과 6년간 교제를 하였으며, 연예게 공식 커플이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결별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무릎팍 도사에서 김주혁이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일 수 잇는 결혼 적령기를 보내고 그냥 헤어졌다는 것이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미안한 심정도 내비쳤습니다.

2017년 김주혁이 안타깝게 세상을 등지게 되었을 때도 빈소에 와서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들이 같이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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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 이후 절정을 달리고 있는 마동석에 대해서 입니다.


본명은 당연히...마씨가 아니라 이씨로 이동석입니다.

1971년생으로 올해 한국나이로 48세이며, 175cm에 100kg에 달하는 우람한 몸매를 자랑합니다.

컬럼버스주립대학교 체육학과를 나왔으며, 2004년 영화 바람의 전설로 데뷔했습니다.

특이사항으로 명예경찰 경위를 가지고 있네요.


한국에서 생활하다가 이민을 간 한국계 미국인 배우로서 현 국적은 미국으로 되어있습니다.


조폭들 저리가라할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른 거대한 팔과 다부진 몸매로 상남자의 이미지를 풍겨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깡패나 형사와 같은 거친 역할을 주로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개그감을 뿜뿜하는 이미지로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기도 하는 배우입니다.


마동석은 19세에 가족들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이민 초기에 몇년은 한국 국적을 유지하다가 미국 국적을 취득합니다. 미국에서는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몬태나 주 그레이트폴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 등에서 거주를 했으며, 특히 몬태나는 한국인들이 거의 없는 후미진 곳이었는데, 미국에서도 깡촌이라고 말할 정도라고 합니다.


여하간 이 후에 퍼스널 트레이너로 활동하다가 2002년 영화 천군의 오디션에 합격한 후 나이 32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배우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8년에 비스트 보이즈에서 하정우에게 돈을 빌려준 강남 사채업자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이 때에 너무나도 리얼한 모습으로 정말 해당 업계사람을 섭외한것 아니냐는 말도 돌았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영화 이웃사람에서 (이 또한 사채업자...)부터 이며, 사채업자이며 깡패인 마동석이 살인범을 물리치는 모습이 시청자들의 뇌리에 각인되게 됩니다.

이 후에도 드라마 나쁜녀석들과, 영화 베테랑, 부산행에 출연하면서 마초와 같은 모습임에도 귀여운 매력이 있는 캐릭터로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그 후에도 줄곧 비슷한 이미지를 유지하게 됩니다.


참고로 조연으로는 흥한 작품이 많았으나, 주연으로 대박이 난 영화는 범죄도시가 거의 유일하며,(동네사람들이 기대되고 있기는 하지만...) 팔씨름 영화도 그닥 대박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해당 영화를 계기로 사단법인 대한팔씨름연맹과 인연이 되어서 홍보이사직을 맡고 있는 상태입니다.


마동석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맡는 배역에 따른 자연스러움(비슷해서...?)을 꼽으며, 하정우와의 호흡을 맞출 시 연기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범죄도시의 경우 청소년관람불가임에도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로, 무거운 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영화의 흐름을 너무 무겁지 않게 만든 센스 있는 대사 처리와 그에 대한 애드리브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느와르나 액션에만 편중된 연기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은 넓은 스펙트럼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이며 형사 배역을 맡아도 부드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배우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부당거래에서 황정민을 감싸안으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 부분이나, 진짜 조폭들 앞에서는 맨날 맞기만하는 범죄와의전쟁에서처럼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드라마인 38사기동대에서 중년가장의 소심한 모습도 잘 표현하였고, 민경훈의 뮤직비디오에서는 순정남의 모습도 잘 표현하였다는 평입니다.


마동석이 많이 이슈가 되고 있는 부분에서는 UFC 마크콜먼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맡았던것과,

케빈 랜들맨의 트레이너도 했던 부분이 있는습니다.

당시 리즈사진을 찾아보면...확실히 엄청난 몸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전성기때의 스펙이 110kg에 체지방량 10% 이하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하여 수상을 하였을 정도라고 합니다. 


[여담]

그리고 이미지와 안맞을 수 있지만...동물들 특히 강아지와 고양이를 정말 좋아한다고 하네요.

병아리의 경우 영화에서도 나왔었지만...잘못 손에 쥐면 병아리가 다칠 것 같아서 무섭다고...


게이 연기를 한 적이 있는데, 2012년 댄싱퀸에서였습니다. 다만 너무나도 마초적인 이미지였기에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캐릭터였다고 합니다.


두산베어스의 팬으로 OB베어스 어린이회원 출신이라고 합니다.

드럼을 상당히 잘 치며 어릴때는 밴드 활동도 했었습니다.

범죄도시 촬영 당시 감량을 하지 않은 본래의 몸이었다고...원래는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 감량을 한다고 합니다.


약간의 사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출연한 영상들을 자세히 보면 눈이 잘 안맞는 걸 알 수 있습니다만...주로 맡는 배역에 빗대어보면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상영예정 영화]


11월 7일 개봉 예정인 "동네사람들"의 주연으로 실종된 여고생을 찾는 기간제 체육교사로 나옵니다.


출연으로 마동석, 김새론(영화 아저씨), 이상엽 등이 있으며, 15세 이상 관람가 입니다.


[줄거리]

여고생이 사라졌지만 너무나 평온한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 기간제 교사로 새로 부임온 외지 출신 체육교사 기철(마동석)은 동네의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실종된 여고생의 유일한 친구인 유진(김새론)만이 친구가 납치된 거라 확신하여 사건을 쫓게되고, 의도치 않게 유진과 함께 사라진 소녀를 찾기 위해 기철이 나서게 됩니다.


영화에서 마동석은 특유의 개그감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의 사랑을 듬뿍 받은 김새롬과 연기를 맞추게 됩니다.


추가로 범죄전쟁에서 윤계상의 부하로 나온 진선규가 병두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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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졸리...툼레이더로 친숙한 섹시 배우.


졸리는 헐리우드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배우 중 한명입니다.

한국에서는 툼레이더를 통해 섹시한 입술을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죠.




그녀는 1975년생으로 한국나이 44세 입니다.

배우이며, 영화제작자이고 작가에 사회 운동가이기도 합니다.


배우 존 보이트와 배우 마셸린 버트란드의 1남 1녀 중 둘째이며, 아버지의 성 보이트를 공식적으로 삭제할 정도로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툼레이더에서는 사이좋은 부녀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배우이며, 가장 영향력있는 스타입니다.


원래 그녀는 어렸을적부터 배우로 잘 되지는 않았고, 여러 이슈들이 많았습니다.

먼저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했을정도로 가정이 문제가 많았습니다.(아버지의 불륜...)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20대 초반까지는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을 정도였습니다.



[영화 인생]

그녀의 첫 영화는 7살때 출연한 Lookin to get out이며, 이때에 아버지와 함께 출연했습니다.

10대 초반에 연기학교에 들어갔으나 2년만에 중퇴했고 이후 할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겪게 되면서 장의사가 꿈이기도 했습니다.(시체 방부증을 취득) 하지만 이후 다시 연기학교로 들어갔으며, 16살에 연예계에 입문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너무나 어두운 분위기 때문에 오디션에서 많이 탈락도 했다는군요.


그녀의 본격적인 활동은 영화 사이보그2 이후이며, 이후 해커스에서 여자 주연을 맡게되었고 1997년 조지 웰러스로 골든 글로브상을 받게 되면서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1998년 HBO의 지아 에서 슈퍼모델역으로 출연했으며,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상과 에미상에 2년연속 후보로 지명되었고 골든 글로브와 미국 배우 조합상을 수상합니다.


본격적인 주목은 1999년 영화 본 콜렉터였으며, 이때의 연기로 호평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주로 TV나 드라마, 그리고 인디 영화에서 활동을 했었기에 지금처럼 엄청난 유명세는 아니었으며, 2001년 툼레이더 영화 한편으로 엄청난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해당 영화가 한국에서도 소위 대박이 났었고, 섹시한 이미지는 곧 안젤리나 졸리의 입술과 글래머러스한 몸으로 대변 되었습니다.


이 후 2005년 브래드피트와 미스터&미세스 스미스를 찍고 2008년 영화 원티드 그리고 2010년 영화 솔트와 투어리스트 등에서 영화의 주 배우로서 흥행을 보증하게 됩니다.


2009년, 2011년, 2013년에 포브스에서 선정. 할리우드에서 가장 출연료가 높은 여배우로 선정되기도 합니다.


2008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체인질링에서 부패한 정부관료들에 의해 어처구니 없이 자기 아이를 바꿔치기 당하는 상황을 맞은 여성을 열연하면서 관객들을 감동시켰고, 이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지만...한국에서는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2011년 피와 꿀의 땅에서란 영화로 영화감독 데뷔도 하였는데요. 2014년 차기작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여 실존인물인 루이스 잠페리니가 전쟁에서 겪은 상황을 영화로 그린 언브로큰이 개봉했습니다.


본 영화의 주요 캐스팅 중에는 미야비도 포함되었으며, 실제 주인공인 루이 잠페리니와 안젤리나 본인이 실제로도 가까운곳에 살고 있던 것으로 밝혀져서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개봉 후 전 세계적으로 1억 6천만불의 수익을 올리면서 흥행에 성공했고, 특히 영화에서 일본군의 학대를 묘사한 부분으로 일본 우익들의 공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2014년 US 위클리는 안젤리나 졸리가 최근 영국 BBC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새 영화 클레오파트라만 찍고 은퇴하겠다는 의향을 표시했다고 보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조만간 정계에 진출하여 정치를 할것이며, 사회운동가로 전업할 것으로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사회활동과 선행]

사업운동가로의 활동도 많은 이들에게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먼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임명되는 등 인권운동가로서 명성을 얻고 있으며, 국제적 봉사활동으로 공로를 인정받아 UN 국제시민상의 최초 수상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국제인권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 무려 영국 왕실로부터 훈장도 받게 됩니다.

현재까지 유니세프에 개인이 낸 기부금 1위가 졸리이며, 지난 10여년간 본인의 사비로 캄보디아, 시에라리온, 탄자니아, 파키스탄 등 30여개국의 난민 캠프를 방문하여 이들의 처지를 알리고 국제적 원조를 받을 수 있도록 많은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단의 종교탄압을 비판하다가 수단정부에서 방문을 금지당하기도 했으며, 미국 국회에 지속적으로 국제 난민을 위한 법을 지정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오기도 했습니다.


2015년에는 UN난민기구 특사로서 미얀마에 가서 아웅산 수지와 함께 미얀마 사람들을 만나고 오기도 했습니다.


2005년에 큰 아들의 이름을 딴 매덕스 졸리 재단을 통해서 캄보디아 최빈곤층에 수자원, 교육, 거주지, 의료 등에 대해 지원을 하는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으며, 이 재단은 이후 매덕스 졸리-피트 재단으로 명칭을 바꾼 후 아프리카에서 밀레니엄 빌리지 프로젝트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케냐,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등에 어린이 학교를 15개 이상 세웠으며, 딸의 고향인 이디오피아에 자하라 어린이 병원을 건립하여 에이즈에 감염된 어린이들을 치료할 수 있도록 돕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자선활동과 사회활동 결과, 피플의 2012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인물 순위 1위로 선정되기도 하였고, 매년 100억 가까이 기부를 하는 그녀의 선행과 아름다움을 과거와 사생활로 빗대어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수많은 선행이 오히려 빛을 발할뿐이었습니다.


[결혼 생활]

첫 남편 조니 리 밀러하고 1996년에 결혼해 1999년에 이혼했으며, 두번째 남편 빌리 밥 손튼(나이차가 엄청나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2000년에 재혼했으나 2003년에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에 세번째 남편인 브래드 피트를 만났습니다. 여담으로 양성애자이며, 첫 남편인 밀러와 결혼하기 전에 일본계 모델이자 배우인 제니 시미즈와 사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트와 사귀고 나서 여자와의 관계를 더는 갈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고 밝혔습니다. 배우 이미지도 양성적인 매력이 있어서, 레즈비언 역도 꽤 잘 소화해냈고 여성 팬도 일반적인 여성 섹시 스타와 달리 꽤 많았습니다.

 


브래드 피트와는 2005년작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포스터를 나란히 함께 장식했습니다. 영화를 같이 찍은 해 전처 제니퍼 애니스톤과 피트와 엮이는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기도 했는데요.


덕분에 포털 사이트에서 졸리 관련 기사가 인기 뉴스로 뜨면, 댓글에서는 꼭 졸리가 나쁘다느니 피트가 나쁘다느니 애니스톤이 불쌍합니다느니 하는 댓글이 우수수 나왔었습니다. 덕분에 기네스 팰트로는 묻혔습니다... 사실 직접적으로 증거는 없고 추측에 불과할 뿐이기도 했습니다. 일단 엮인 세 명은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고 일축했었습니다.

 

연애 초기까지만 해도 졸리의 괴팍하고 불같은 성격을 피트가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의외로 무난한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부부가 기부와 봉사활동에 자주 참여해 이미지가 엄청 좋아졌는데요.


할리우드의 대표 잉꼬 커플로 손꼽히며 둘이 합쳐 '브랜젤리나'라고 불릴 때가 많았습니다. 피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인 샤일로, 녹스, 비비언, 입양한 아이들인 매덕스, 팩스, 자하라까지 모두 여섯 명이이 있습니다. 지금도 추가 입양을 고려 중이라고 하지만 아직 입양 소식은 없는 상태이며, 쌍둥이를 낳은 후, 잡지 '피플 앤 헬로'에 쌍둥이 사진을 판매했습니다. 이 사진은 무려 1400만 달러에! 이는 가장 비싼 유명인 사진으로 역사에 기록됐고, 이 돈은 졸리-피트 재단에 기부됐습니다.

 

2009년 별거와 결별설이 나돌았으나 본인들은 이를 완전히 부정하며 오히려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염장을 질렀는데요. 2010 1 24일부터 이혼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라는 루머가 널리 퍼졌었습니다. 두 사람은 재산을 분할하기 위해 유명한 변호사에게 이혼 소송을 수임하고, 육아 문제에서는 공동 양육권을 갖기로 했습니다 라는 카더라 통신도 나왔습니다.


이로써 피트가 애니스톤과 다시 합칠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두 사람은 애초에 결혼한 적이 없으니 이혼이니 뭐니부터가 웃긴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게다가 소문의 근원지가 되는 영국 신문사는 가십거리라면 뭐든지 싣고 보는 습성이 있어서 소스 신뢰성이 한없이 떨어지기도 하며, 이 커플의 대변인도 이별설은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피트-애니스톤 재회설이 간간히 제기되었지만, 애니스톤은 나름대로 다른 남자와 잘 사귀고 있습니다. 현재 애니스톤은 저스틴 셔룩스와 약혼한 상태이며, 그리고 비단 졸리가 아니더라도 한국에 흔히 번역되는 헐리우드 연예인들의 기사는 대부분 신빙성 없는 루머를 확인도 안하고 퍼오는 것이 많기도 합니다.


졸리-피트-애니스톤 셋을 가지고 거의 소설수준의 기사가 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닌데요.

공식 인터뷰라든지 영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신뢰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2012년 브래드 피트가 청혼했지만, 두 사람은 미국 전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하기 전까진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201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고, 2014 8 23일 브란젤리나는 프랑스의 가족 예배당에서 아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2016 9, 안젤리나 졸리가 브래드 피트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였는데요.

 

이 과정에서 졸리 측에서는 브래드 피트가 전용기 내에서 맏아들 매덕스에게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둘렀다며 아동 학대 의혹을 제기하였으나, FBI의 수사 결과 무혐의로 결론이 났습니다.


공식적으로 법원에 제출된 이혼 사유는 "극복할 수 없는 성격 차이". 다만 피트의 아동학대 의혹을 제기하면서 임시 양육권은 모두 졸리가 가지고 있는 상태이며, 이에 대해 피트 측에서는 이혼철회 및 양육권에 대한 재협상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으며, 이 내용은 다큐멘터리로 나온다고 합니다.

 

2017 3월 피트와 화해설이 돌았으며, 다시 합친다는건 아니고 이혼 후, 양육권 문제 조정중에 나온 말로 판단됩니다.

아동학대로 고발 할 정도로 험악했는데 기사대로 '오해'가 풀린건지, 멘탈이 좋은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여담]

졸리는 왕성한 자선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UNHCR 친선대사였고, 이때 공로로 UN 기자단으로부터 '세계시민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졸리는 수입의 3분의 1은 쓰고, 3분의 1은 남한테 주고, 3분의 1은 저축하는 자신의 룰을 만들어 엄격히 지키고 있습니다.

 

3개 국가의 시민권을 갖고 있으며, 미국, 캄보디아, EU. 캄보디아에서 펼친 자연 보존 노력으로 캄보디아 왕으로부터 시민권을 부여받았고, 보스니아 전쟁 후 펼친 전후 복구 노력으로 유럽 명예 시민권을 받았습니다.

 

파일럿 면허를 갖고 있고, 경비행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스턴트 대역을 쓰기 싫어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라라 크로프트' 역을 할 때는 스턴트 연기의 80%를 본인이 직접 했습니다.

 

얏타맨 실사영화에서 도론죠역에 캐스팅되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거절했습니다 그 자리는 시모츠마 이야기에서 활약한 바 있는 후카다 쿄코가 안젤리나 졸리를 대신했습니다. 하지만 퀄리티가 극도로 떨어졌는데요.

만약 졸리가 도론죠 역할을 했더라면 얏타맨 제작비의 거의 전부를 졸리 개런티로 탕진한 꼴이 되었을 것입니다.

 

문신을 많이 하는 배우중 한명이며, 한자 死(죽음)와 勇(용기)도 새겨져 있습니다.

 

PR을 담당하는 개인 퍼블리스트가 없습니다. 졸리 같은 A급 배우가 PR 담당자를 두지 않은 건 상당히 이례적이며 PR은 모두 자기가 알아서 처리한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아버지 존 보이트와 어머니 마셸린 버트런드는 보이트의 불륜으로 인해 졸리가 1살이 되던 해 이혼했습니다. 이후 경제적 지원과 연락이 두절되었고, 졸리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이후 졸리가 유명해지고 나자, 관심병 기질이 있는 존 보이트가 미디어에 그녀의 사생활을 폭로하고 뒷담을 수차례 늘어놓는 바람에 둘은 사이가 더 벌어졌습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 보이트가 졸리를 정신 이상자로 모는 발언을 하기도 하고, 이후 캄보디아 아이를 입양하는 과정에서 마찰이 생겨 둘 사이는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이 금이 가게 됩니다


이후 약 7년 간 교류가 없었다가 예비사위 피트의 중재로 그럭저럭 좋아졌고, 어머니의 마셸린의 사망을 계기로 완전히 화해했습니다. 2009 12월 인터뷰에서 존 보이트가 "메간 폭스는 내 딸하고 비교도 안 된다"라고 밝힌 것을 보면 관계를 많이 회복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원래 머리색깔은 아버지 존 보이트를 닮아 금발이었으나 어머니가 졸리가 4살 때 갈색으로 염색. 그게 맘에 들었는지 이후 이 색깔을 유지합니다.

 

어머니 마셸린은 딸이 밖으로 나돌다가 마약에 손댈까봐 차라리 남자친구가 14살인 졸리의 방에서 동침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걱정이 됐는지 옆방에서 잤다는 후문이네요.

 

젊은 시절에는 막장 이미지를 달고 다녔습니다. 마약, BDSM, 다자연애 경험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했습니다, 친오빠와 공석에서 딥키스를 해서 근친상간 루머가 돌기도 했으며, 또한 피를 담은 병을 남편과 교환해서 가지고 다니는 등 괴팍한 행동으로 타블로이드지에 연속으로 기사거리가 되었습니다. 생방송 인터뷰에서 남편이었던 빌리 밥 손튼과 함께 등장하면서 "오 우리 방금 카섹스하고 왔어요"하고 자랑하는 등, 사람들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기질이 다소 있는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철이 든 계기가 된 것은 2001년도에 툼 레이더를 찍기 위한 캄보디아 방문이었습니다. 내전으로 인한 비참한 상황을 목격한 졸리는 자신이 너무 편하게 살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 때부터 캄보디아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빈민 지원과 환경보호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졸리는 첫 아이인 매덕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매덕스를 입양하여 어머니가 된 후 자신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자신을 학대하는 성격이라 아이를 올바르게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육아를 포기하고 있었으나, 캄보디아에서 봉사하며 아이들을 돌보았던 경험에서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매덕스를 키우며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계속했습니다, 피트와 사귀기 시작하면서 둘이서 함께 국제적으로 선행의 범위를 넓혀나갔습니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너무나도 행복과 사랑이 충만하여 삶의 보람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임신하여 쌍둥이를 낳았고현재 피트와 졸리는 매덕스(2001년생, 캄보디아에서 입양), 팍스(2003년생, 캄보디아에서 입양), 자하라(2005년생, 에티오피아에서 입양), 샤일로(2006년생), 녹스(2008년생), 비비엔(2008년생) 여섯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2013 5월에 양측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가족력상 암 유발 유전자가 있어서 그대로 지낼 경우 유방암 발병 확률이 87%나 되었기 때문에 내린 선택이었다고합니다. 실제로 졸리의 어머니 마셸린 버트런드는 난소암으로 2007년에 사망했는데(향년 56) 이 암 유전인자를 졸리가 물려받았습니다. 배우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 성형(유방 재건)수술을 통해 유방의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3 6월 루퍼트 머독이 소유하고 있는 계열사 중 두 곳인 News Corp & News International에 졸리-피트 부부가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04년부터 2005년 한창 이 둘의 관계를 놓고 떠들썩한 와중에 졸리 주변인과 졸리의 휴대전화 메시지와 통화를 도청 해킹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결별설을 크게 터뜨렸던 것 역시 이쪽 회사였습니다

 

2015 3월에 난소에서 악성 종양이 발견되어 난소 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졸리는 모계로부터 유방암과 난소암 발병율이 매우 높은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어머니, 외할머니, 이모 등 외가에서만 3명이 관련 암으로 사망한 바 있었습니다. 졸리의 경우에도 최근 난소에서 악성 종양이(암은 아니라고 합니다) 발견되었고, 이미 폐경에 접어들었기에 난소절제술을 받기로 결정했습니다고 합니다. 대신 자궁에 여성 호르몬 패치 삽입 시술을 받았음을 밝혔습니다.

 

졸리는 "이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명확해졌습니다.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 손주들도 만나보고 싶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습니다. 아이들이 나중에 '우리 어머니는 난소암 때문에 사망했습니다'라는 말을 하게끔 만들고 싶지 않다" 라고 인터뷰에서 토로했습니다.

 

졸리 역시 세월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보톡스 안하고 스스로도 늙어가는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이상할 것이 없다고 발언했습니다. 본인이 이미 미모 절정까지 찍고 왔기에 한점의 후회도 없는 듯하며, 팬들도 계속 성형수술을 하는 또래 배우들보다 졸리가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좌우지간 클래스는 영원한것 같습니다.

 

여러 연예 매체들의 카더라 소식에 따르면 섭식장애에 걸려 굉장한 저체중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주변 사람의 이야기들 뿐이고 공식적으로 확인이 된 건 없습니다.

 

한 때 믹 재거와 교제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판 더빙에서 졸리의 목소리는 툼 레이더 이전까지 김아영이 담당했으나 이후로는 주로 이선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2018 11 2일 봉사 활동 겸 장남 매덕스과 한국 대학 투어를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매덕스가 한국어 공부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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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채정안 - 40대에도 뛰어난 미모와 몸매



40대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미모와 몸매를 뽐내고 있는 배우 채정안 입니다.


본명: 장저안


1977년 9월 9일 생으로 1995년 존슨즈 깨끗한 얼굴선발대회로 데뷔하였습니다.

이 후 광고 모델로 활동했으며, 남자셋 여자셋과 미나등에 출연하여 인지도를 쌓았고,

가수 활동도 할 정도로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엔터였습니다.



170이 넘는 키에 볼륨감있는 몸매를 가지고 있으나, 노출이나 섹시한 역할을 한 적은 거의 없으며,

사극과 코믹쪽에서도 연기경력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1999년도에 유행했던 테크노 열풍에 기대어 가수로 데뷔했으며,

가수로서 신인상도 받았었습니다.


데뷔 초기에 특별히 연기를 잘하지도 연기를 못하지도 않았던 평이었으며,

다만 연기력 보다는 맡게되는 배역의 특성을 잘 살리는 연기를 했던것 같습니다.



그녀의 전성기는 커피프린스 1호점을 통해 다시 한번 맞이하게 되었으며,

역할 또한 여성들의 워너비로 떠올랐기 때문에 윤은혜 보다 오히려 여성들의 동경을 많이 받은 편입니다.

하지만 드라마 종영 이후에도 한유주 스타일이 너무나 자주 언급될 정도여서 그 이후 인기가 하락합니다.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역할을 잘 소화하며 좋은 예능감을 보였고,

아는형님에도 출연하여 존재감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할 정도로 레전드 방송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에피소드]

- 전에 받은 상금이 있는데 100만원의 상금을 전자오락과 군것질로 다 썼다고 합니다.

- 최강희와는 동창이라고 합니다.

- 가수 시절 KBS 뮤직뱅크에서 최고 5위까지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정현, 김현정, 백지영등 어마무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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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첫번째 셀럽~ 김충재 디자이너

나혼자산다에 출연하면서 대중에 많이 알려지게 된 제품디자이너 입니다.


1986년 생으로 한국나이 33세이며, 경기도 수원시 태생입니다.

효원 고등학교 졸업 후 추계예술대학 서양화를 전공했고,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을 나왔습니다.


키 179.6의 훤칠한 키에 얼굴도 훈훈합니다.



웹툽작가인 기안84의 친한 지인으로 최근 나혼자 산다에 출연하게 되었으며, 훈훈한 매력을 뽐내는 외모로 주목받고 있기도 합니다.

남자가 보기에도 잘생긴 외모에 키도 크고 매력적입니다.

나혼자에서 박나래 또한 많은 호감을 보이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유명해진 덕분인지 에스팀과 SM엔터테인먼트가 함께 설립한

스피커와 계약을 맺고 방송인으로서의 활동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방송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 기안84에게 아티스트로서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조언을 듣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렇게 소속을 가지게 되었고 한동안은 나혼자에 출연하지 않았다가 얼마전에 오랜만에 출연하여 

기안84와 함께 건강검진을 받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활동을 보자면, 나혼자 산다에 6회 출연, 비디오 스타, 영재발굴단, MBC추석특집 독수공방에 출연했습니다.

추가로 다이나믹듀오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으며, 현재 갤럭시노트9 홍보대상 입니다.

에피소드로는 기안과 함께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키가 180넘었는데 줄은것 같다고...

소속이 생기면서 개인매니저가 생김.

등등등...

매력적인 모습으로 방송활동을 이어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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